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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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
칭찬합시다
- 제목
- 그저. 감사 합니다.
- 등록일
- 2024-03-20
- 등록자
- 하재수
- 해당관서
- 천안지청
- 해당공무원
- 산재예방지도과 이현덕 근로감독관님
- 공개범위
- 실명공개
2023년 7월의 어느날 이젠 잊혀지지 않는 그날은 아침 교대근무를 하던 저에게 모르는 번호의 전화 한 통이 시작 이였습니다. 언니가 다쳐서 천안병원으로 가고 있어요 더이상 물어보면 무서운 대답을 들을것 같아 작업복을 갈아 입지도 않고 병원 이름만 확인 한 채 운전 하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직접 전화하지 못 했으니 상황을 각오하자 도착하니 아내는 MRI촬영후 손에 붕대를 감은채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첨으로 50먹고 엉엉 울었습니다. 다행이여서. 이 정도여서. 나를 보고 울어 줘서... 이만한게 얼마나 다행인지 걱정보다 안도감에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를 안아주는 아내가 이 정도여서 다행이라고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 이후는 수술, 재수술, 입원 치료 수술해주신 원장님은 수술은 잘 되었지만 신경이 살아야되니 30분간격으로 그만 할때까지 아내의 손가락을 주사바늘로 찔러 강제로 피를 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행이 아내는 감각이 없어서 고통을 몰랐기에 7일을 30분마다 피를 내며 곁을 지켰습니다. 그때부터 였을것 같습니다. 가슴에 무언가가 하나하나 무너진다고 느낀것을..
3주의 입원과 6개월간의 통원치료중 아내는 옆의 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나봅니다. 연애때보다 더 사소한 것으로 많이 웃어 주었습니다. 어느날 3층 저희집 거실에서 창밖을 보며 속으로 이런곳에서 떨어지면 죽지 않고 아프기만 하겠네 라고 생각하던 저에게 오랫만에 밖에나가 오빠 좋아하는 술이나 한잔하자고 하더군요 네. 그렇게 들키곤 했나 봅니다.
이후는 제가 여러곳을 다니면 확인하던 대로 조사. 피해자조사. 산재심사. 치료계획 승인등 하나하나의 고비를 그렇게 견디며 아내와 전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서로가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내와 전 우리의 위기를 그렇게 버티고 마주서서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는 두아들이있는 가족을 지키기로 한것이죠.
그런 우리부부는 천안지청으로 이현덕 감독관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 동안의 여러 일로 인해 타인에게 상황 전달이 어려워진 아내를 위해 전 같이 조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왜냐하면 사건ㅇ이야기에 대해 눈물을 쏟아서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번 고비도 잘 이겨내자 하던 저에게 감독관님은 아내의 대답을 기다리시더군요. 하나하나 배려해주시더군요. 울고있는 아내에게 미안해 하시더군요. 그때 부터였던것 같습니다. 옆에서 제가 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왜나면 이분은 저희말을 들어 주시니깐요 그전까지 맞습니까? 맞나요? 그때 왜 그러셨죠? 라는 말만 듣던 전 처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아내가 왜 이렇게 아파야하는지 물어봤던건 처음 이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저희 부부에게 배려와 오로지 선의로 말씀해주신분은 감독관님이 처음이였던 겁니다.
그 대화하나하나가 얼마나 저희에게 위로와 안도가 되었는지..
이현덕 감독관님 오늘 중학생 아들이 몇일전 엄마와 천안을 왜 갔다왔는지 물어보더군요.
전 아들 아빠가 참 선하신분을 뵙고 왔단다. 선의 라는걸 아빠가 오늘 첨으로 봤다. 이제까지는 아빠가 너 공부 잘해라 열심히 해라 이런 말 않했지만 혹시라도 니가 뭔가를 하고 싶다면 오늘 아빠가 뵌 분처럼 선의로 어려운 사람에게 힘든 사람에게 힘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맘을 첨으로 가져본다 라고요.
감독관님 전 이글을 쓰기전까지만 하더라도 화가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난폭운전 하는차나 반말하는 사람에게 끝까지 따라가서 창문내리고 소리치고 주민등록증 보여주며 내가 더 나이가 많다고 화를 내던 참 화가 많던 사람이였습니다.
이젠 세상에 선의가 있음을 알았으니 저도 이유가 있으리라 마음먹으며 감독관님이 주신선의 세상에 풀며 살아 보고자 합니다. 이런 제가 감독관님께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감독관님과 한하늘 아래있길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그 이후는 수술, 재수술, 입원 치료 수술해주신 원장님은 수술은 잘 되었지만 신경이 살아야되니 30분간격으로 그만 할때까지 아내의 손가락을 주사바늘로 찔러 강제로 피를 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행이 아내는 감각이 없어서 고통을 몰랐기에 7일을 30분마다 피를 내며 곁을 지켰습니다. 그때부터 였을것 같습니다. 가슴에 무언가가 하나하나 무너진다고 느낀것을..
3주의 입원과 6개월간의 통원치료중 아내는 옆의 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나봅니다. 연애때보다 더 사소한 것으로 많이 웃어 주었습니다. 어느날 3층 저희집 거실에서 창밖을 보며 속으로 이런곳에서 떨어지면 죽지 않고 아프기만 하겠네 라고 생각하던 저에게 오랫만에 밖에나가 오빠 좋아하는 술이나 한잔하자고 하더군요 네. 그렇게 들키곤 했나 봅니다.
이후는 제가 여러곳을 다니면 확인하던 대로 조사. 피해자조사. 산재심사. 치료계획 승인등 하나하나의 고비를 그렇게 견디며 아내와 전 그렇게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서로가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아내와 전 우리의 위기를 그렇게 버티고 마주서서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는 두아들이있는 가족을 지키기로 한것이죠.
그런 우리부부는 천안지청으로 이현덕 감독관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 동안의 여러 일로 인해 타인에게 상황 전달이 어려워진 아내를 위해 전 같이 조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왜냐하면 사건ㅇ이야기에 대해 눈물을 쏟아서 대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번 고비도 잘 이겨내자 하던 저에게 감독관님은 아내의 대답을 기다리시더군요. 하나하나 배려해주시더군요. 울고있는 아내에게 미안해 하시더군요. 그때 부터였던것 같습니다. 옆에서 제가 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왜나면 이분은 저희말을 들어 주시니깐요 그전까지 맞습니까? 맞나요? 그때 왜 그러셨죠? 라는 말만 듣던 전 처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아내가 왜 이렇게 아파야하는지 물어봤던건 처음 이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저희 부부에게 배려와 오로지 선의로 말씀해주신분은 감독관님이 처음이였던 겁니다.
그 대화하나하나가 얼마나 저희에게 위로와 안도가 되었는지..
이현덕 감독관님 오늘 중학생 아들이 몇일전 엄마와 천안을 왜 갔다왔는지 물어보더군요.
전 아들 아빠가 참 선하신분을 뵙고 왔단다. 선의 라는걸 아빠가 오늘 첨으로 봤다. 이제까지는 아빠가 너 공부 잘해라 열심히 해라 이런 말 않했지만 혹시라도 니가 뭔가를 하고 싶다면 오늘 아빠가 뵌 분처럼 선의로 어려운 사람에게 힘든 사람에게 힘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맘을 첨으로 가져본다 라고요.
감독관님 전 이글을 쓰기전까지만 하더라도 화가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난폭운전 하는차나 반말하는 사람에게 끝까지 따라가서 창문내리고 소리치고 주민등록증 보여주며 내가 더 나이가 많다고 화를 내던 참 화가 많던 사람이였습니다.
이젠 세상에 선의가 있음을 알았으니 저도 이유가 있으리라 마음먹으며 감독관님이 주신선의 세상에 풀며 살아 보고자 합니다. 이런 제가 감독관님께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그저 그저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감독관님과 한하늘 아래있길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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